Lesen und Schreiben #1 - 괜히 쫄았당 ^.^
오늘 수업은 17시 30분에 시작하여 19시에 끝나는, 월요일과 화요일 수업에 비하면 일찍 시작하여 일찍 끝나는 다소 가벼운 수업이다. 늦지 않게 가기위해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문득 나에게 노트가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도중에 잠시 드럭스토어에 들려 노트를 구매했다. 머릿속으론 스프링이 끼워져있는 평범한 노트를 생각했으나, 그곳에 실제로 있었던건 다이어리로 써야될 것 같은 예쁜 표지들의 큰 수첩들. 우선 아무거나 사야겠다싶어 얼른 고른 뒤 계산을 하고 다시 강의실로 향했다.
노트는 알고보니 표지에 사진을 끼울 수 있도록 되어있어, 자칭 '나만의 수첩>_<'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닼ㅋㅋㅋㅋ(안성맞춤하니까 안성탕면이 먹고싶어진다...ㅠㅠ) 예쁜 다이어리 느낌이지만, 나는 필기를 목적으로 산 것이기에 왠지 사진이 아닌 명언같은 문구를 넣고 다녀야 할 것 같군.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독일의 노트는 비싸기만하고 못생겼으니 한국에서 좀 챙겨와라-하는식의 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웬걸. 너무 예쁜뎅?!?! 물론 그 분은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노트를 말하는 것이었겠지만 ㅎㅎ!!
이미 한번 현장답사 겸 와봤던 곳이라, 이번엔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올 수 있었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가니, 그곳엔 네 명의 중년여성들과 한명의 할머니 선생님! 현지인 대상의 수업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예측이었다. 오순도순 앉아서 수다를 떨고있던 네 명의 중년여성들은 모두 외국인이었고, 이어서 한 명씩 들어오는 다른 학인들 또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리고 나도 외국인!!! 잘됐다 싶었던게, 혹시나 수업이 너무 어려워 내가 중도하차하거나 쉽게 지쳐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조금 겁을 먹었었는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느긋한 수업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진짜!!!! 흐흐!!! 심지어 선생님이 우리를 거의 개인적으로 봐주며 진행되는 정말 여유로운 수업이었다. 사람은 총 8명정도 되었고, 나 / 맞은편에 앉아있는 중년 여성 / 내 옆에 앉은 알파벳을 모르는 젊은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같이 앉게 하여 그들을 같이 묶고, 우리 셋에겐 각자 알려주는 식이었다. 일단 이 곳에서 내가 제일 막내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았는데, 이는 곧 다른 학인들의 독일어를 듣자마자 조금 사그라들었다.ㅠㅠ 다들 읽기나 문법적인걸 조금 어려워 할 뿐, 말하거나 듣는데는 큰 무리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는... 말하기도 어렵고 듣기는 더어렵고 그나마 읽기 쪼오금, 쓰기 쪼오금 할 줄 앎. 역시 자만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켜고 나에게 주어진 유인물을 풀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내가 유인물을 푸는 동안 다른 학인들을 먼저 봐줘도 되는지 묻는 선생님에게, "당연하죠!" 하며 대답을 한 뒤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시기 전까지 무조건 다 풀어야지!! 하며 막판 스피드를 올렸고, 뿌듯한 마음으로 빈칸을 다 채운 나는 유인물의 마지막 페이지 글귀를 보고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문제가 헷갈렸나요? 조금 어려웠나요? 그렇다면 A1 문법을 공부하세요!' 세상에... 나 이거 풀면서 좀 헷갈린 부분도 있었는데...A1면 완전 1단계 수준인건데 이거 그러면 A2 인건가..? 혹시 A1인건 아니야!?!?! - 그동안 나는, 나의 독일어 실력을 과대평가해왔음을 다시 깨달았고 비록 현재 B1 합격증을 갖고있으나 실력은 여전히 A수준이란걸...^^....증명해버리고 말았다. 휴ㅠㅠ 그래도 A단계 수준인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어찌저찌 생활하고 있는거면, 그것 또한 대단한거지 뭐!! 하며 열심히 셀프 위로를 하던 중 선생님이 내 앞에 앉으셨고, 나에 대해 궁금하다는 듯 여러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에는 지난달에 왔어요. 8월 12일. 그러니까.. 3주전에 왔네요.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을 했는데, 여기서도 간호사로 일을 하고싶거든요. 직업학교를 다니고 있는건 아니고, 독일의 면허증과 한국의 면허증을 비교한 뒤 그에 대한 인증을 받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번주에 뒤셀도르프의 관청에 서류들을 보냈고,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중이에요. 한국에선 B1 시험을 합격했고, B2까지도 쳤으나 그건 떨어졌어요. 그래서 이번 12월에 B2 시험을 다시 앞두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말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중간중간 꼬이는 어순과 부족한 어휘력으로인해 조금 더듬으며 말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미 내 말을 다 이해하고 계셨기에, 이 먼 나라에 혼자 왔다는 것에 대한 짧은 감탄과 놀랍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계셨고, 조금 멀리 떨어져 앉은 다른 학인들도 내 말을 이해하곤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다행이었다. 내가 독일어를 영 이상하게 사용하는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다 풀어놓은 유인물을 보시곤 일단 오늘은 끝날 시간이 다 되었기에 자신이 집에 가져가서 확인한 뒤, 다음주 수업에서 마저 이어가자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주부턴 저 쪽에 같이 앉아있는 학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며 수업을 해보자고도 하셨다. 내가 '한국에서 B1 레벨을 취득했으나, 여전히 말하고 듣는건 어려워요' 라고 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빠르게 끝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엔 여러가지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수업 초반에 타인을 내 마음대로 평가했다는 자책감과 반성, 여전히 한국에서의 버릇이 남아있구나 싶은 씁쓸함, 독일에 도착한지 '이제 고작 3주'일 뿐인데 마음 속 조바심으로 인해 '벌써 3주'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변질되고 있는듯한 느낌.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엔 '나는 언제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인들처럼 독일어에 익숙해 질 수 있을까-'하는, 당장엔 그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으로 끝난다.
이번주부터 시작된 새로운 수업은 분명 나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새로 사귄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그리고 선생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싶고 또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욕심만 앞서다보면 나를 갉아먹게 될 뿐이겠지. 지금도 나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 즐거움만 잃지 않으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독일어에 대한 호기심, 검색할때마다 매번 새롭게 나타나는 동사들, 긴 한국어 문장을 독일어로 옮겨놓고보면 꽤 간단해져서 피식 나오는 웃음- 이런 사소한 것들로부터 느껴지는 흥미를 오랫동안 간직하고싶다. (사실 흥미를 잃고 독일어가 지겨워지는 순간 또한 부럽다능!!) 오늘은 열두시가 되기 전에 잠들어야지. gute Nacht!